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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역사

3. 서울대목구의 설정과 분리

1886년 한불조약이 체결되면서 어느 정도 선교의 자유를 얻게 되

고, 1898년 명동대성당의 봉헌식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 성당이 세워

지면서 전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자수가 날로

늘어나 제주도와 간도까지 뻗어나가자, 1911년 조선대목구에서 대구

대목구가 분리되었습니다. 이후 조선대목구는 서울대목구

(당시 이름은

경성대목구)

로 이름을 바꾸어 충청도 이북 지역만을 관할했습니다.

192 년에는 함경도와 간도 지방을 관할하는 원산대목구가 분리되

었고, 1927년에는 평안도 지역의 평양지목구가 독립되었습니다. 1928

년 1월에는 황해도를 감목대리구로 만들고 한국인 김명제 신부가 초대

감목대리를 맡았습니다.

이처럼 한국 천주교회가 날로 발전하는 가운데 1925년 7월 5일에

로마 교황청에서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때 순교한 79위의 시복식이 열

렸습니다. 1936년에는 서울의 네 번째 본당인 영등포본당이 설립되었

고, 1939년에는 춘천지목구가 분리

·

설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

점기를 거치면서 신사참배, 창씨개명 등 일제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시

련을 겪어야 했는데, 1941년 12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외국인 선교사들을 체포·구금

하고, 조선의 각 대목구의 장으로 일본인 성직자를 앉히려고 했던 것입

니다. 이러한 와중에 당시 주교였던 라리보 주교가 사임하고, 1942년

초에 노기남 신부가 첫 한국인 주교로 서품되어 서울대목구의 제1 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대목구는 비로소 파리외방

전교회에서 자립하기에 이릅니다. 노기남 주교는 일제 말기의 여러 가

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양지목구와 춘천지목구의 장까지 맡아 서

울대목구를 이끌었습니다.